4218 words
21 minutes
The end of me
2026-08-24
X

Disclaimer#

이 글은 AI의 개입이 단 하나도 없이 작성된 마지막 글입니다. 그리고 아마, 이 blog.wane.im 도메인을 가진 블로그에서 작성하는, 마지막으로 기술과 관련된 글일 것이고, 동시에 처음으로 기술적이지 않은 글일 것입니다. 심각한 이유는 아니고, 이제부터 기술 관련 글은 모두 HackMD에 작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blog.wane.im 에는 이제 기술과 관련하지 않은 글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애초에 글을 많이 쓰지도 않지만요.

이제 해커 Wane은 끝!#

무엇으로 글을 시작할 지 몰라서 이렇게 자극적인 단락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작성하는 2026년 8월 24일 기준으로 저를 아는 (혹은 저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도 의문이지만, 있다고 해서 ‘한 번 이 사람 블로그 들어가봐야지’ 하고 들어온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저를 처음 보는 사람은 아마 해킹과 관련해서 이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가 하고 해당 블로그에 접근한 것일텐데, 아쉽습니다. 만약 이 글이 제 블로그에서 읽는 처음 글이라면, 지금 당장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시고 제 「역-작」을 먼저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것부터 읽으면 제가 초라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두용미보단 용두사미가 낫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옵시다. ‘1년만에 아무 소식 없다가 돌아와서 뭔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라고 물으실 수 있지만 애초에 저는 생존신고나 커뮤니티, SNS와 같은 언-프로패셔널한 것을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당신이 아는 Wane은요.) 제가 SNS나 커뮤니티를 이용할 때는 항상 주목할만한 성과를 달성했을 때인데, 요즘은 그게 없으니 더더욱 소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뿐이죠. 즉, 저는 항상 같은 스탠스를 취해 왔지만 상황의 변화로 인해 다르게 느끼는 것이였습니다.

My story, end to end#

사실 이 글은 조금 깊이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기 전에, 가볍게 제 해킹 스토리를 읊으려고 합니다. 생각보다 제 스토리는 흥미있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어릴 때부터 영화 속의 해커를 동경하여…’ 와 같은 시시하고, 진부하고, 재미없는 내용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에 깊이가 있고, 노력하고, 어느 정도 재능이 있으며 학문에만 몰두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려는 화이트 해커’ Wane을 봅니다. (적어도 저와 인터랙션이 있던 사람과의 대화에서 제가 멋대로 판단한 결과입니다.) 이것은 반만 맞는데,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동기를 여러분들은 아마 잘못 생각하고 있으실 것입니다. 아마 ‘순수한 해킹에 대한 열정, 관심’이거나, 비슷한 것이겠죠.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해킹에 열정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열정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열정이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즉 그 행위를 하면 도파민이 나오는’ 열정이라면 그런 건 해킹에 대해서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어떤 식으로 해킹(리버싱)을 시작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특히 8월 전까지는 컴퓨터 과학, 흔히 ‘알고리즘’, ‘코딩 테스트 문제’ 등으로 알려진 것을 주력으로 하는 사람이였습니다. 당시에 Baekjoon Online Judge라는 플랫폼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저는 상위 7~8% 정도를 달리는, 상위권이긴 하지만 내로라할 정도는 아닌 애매한 포지션이였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노력해서 상위 1% 내지, 그러니까 이것으로 밥 벌어먹을 수 있는 수준까지 갈 수 있는가?’ 를 재단하면, 저는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과 내 멘탈이 너무 많이 소모될 것이다’ 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가망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때 제 눈에 띈 건 Dreamhack이였습니다. 당시에 저는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해킹방어과’ 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해킹이라는 학문에 접근할 동기가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여름방학 끝나기 전까지 드림핵을 그럭저럭 많이 하였습니다. 같은 반에 Mylostchristmas가 있었는데, 얘보단 내가 잘하는 것 같으니까 얘는 이겨보자 하는 마음에 좀 열심히 임했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해커’가 되는 것에 가장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제가 리버싱 리더보드 10등 안에 든 것이였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Top 10은 무슨 Top 100도 힘들 것 같던, 애초에 100등 안에 든다고 해도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가 의문인 알고리즘 판때기와, 적당한 노력으로도 한국 10등 안에 들 수 있고, 돈도 많이 준다는 리버싱 판때기를 비교했습니다. 이거, 안 넘어갈 이유가 없죠. 알고리즘을 아예 때려치우고 해킹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저의 재능이나 비슷한 외부 요인이 Top 10 달성에 영향을 미쳤을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여기서 저는 리버싱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드림핵을 한 것도 해킹방어과니까 해킹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동기입니다. 애초에, ‘컴파일러가 언어를 번역해서 16진수 파일 부산물을 만든 것을 도구를 이용해서 이해한다’는 행위 자체가 짜쳐 보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저는 그 행위에 어느 정도 재능이 있었고, 여기서 가능성을 보았기에 리버싱을 계속하게 된 것입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분야에서 어떻게 최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그 부분은 조금 더 흥미롭습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아마도 알고 있는 내용일 텐데, 제가 2024년 3월 리버싱 1등을 탈환합니다. 이때까지 목표가 리버싱 1등 탈환이였는데, 그 목표를 달성하니 뭔가 허무했습니다. 이 정도로 잘하면 먹고 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겠고, 더 이상 객관적인 지표로 봤을 때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직관적인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리버싱에 대한 흥미도 자연스럽게 떨어집니다.

그런데, 곧 Discord로 메시지가 하나 옵니다. 대충 ‘너 리버싱 잘하는 것 같다. 너의 팬이다.’ 기분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이 메시지를 보고 저는 우월감을 느꼈고, ‘Wane이라는 사람이 이제 해킹판에서 이름이 알려지는구나’를 몸소 느낍니다. 이후로도 비슷한 메시지가 여러 다른 사람들에게 오고, 심지어 제가 이전에 동경했던 랭커들에게도 오면서, 이 우월감과 관심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하나 할당합니다. ‘1등을 최대한 오래 유지해 보자.’

이 과정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알터네이티브한 방식인 대회도 참가하고, 프로젝트도 하면서 도파민을 꾸준히 챙기게 됩니다. 즉, 자극적이게 해석하게 되면 ‘Wane이 만들어낸 성과는 모두 이렇게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한 것일 뿐이다’가 됩니다. 저는 여기에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났습니다. 같은 보상을 계속해서 느끼게 되면, 이제 뇌는 그것을 예측된 보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거죠. 이러한 지속적인 관심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에 따른 도파민도 줄어들고, 결국에 다시 리버싱에 흥미를 잃게 됩니다. 이번엔 진짜로요. 그렇게 리버싱 1위를 다시 FazeCT라는 플레이어에게 탈환당하고, 대회 활동도 줄어들게 됩니다. 열심히 하던 중 직장 또한 얻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열정을 가질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여기에는 AI가 한몫한 것 같네요.

2026년, 지금의 저는 이제 해킹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진 상태입니다. 드림핵 리버싱 리더보드에는 Top 10에서조차 저를 찾을 수 없으며, 대회 수상 이력과 같은 것은 모두 과거의 영광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해킹에 대해 열심히 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직장 일은 예외입니다. 돈은 열심히 벌어야죠!) 외적 요인은 오래 가지 않는다.. 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End of my ego#

제가 단락에 ‘해커 Wane은 끝’이라고 적었는데, 사실 여기에 들어있는 뜻은 약간 심오합니다. 아까 해킹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이유에 대해 AI를 언급하고 넘어갔는데, 이게 사실 꽤나 큰 지분을 차지합니다. 이 글 또한 여기가 본론입니다.

최근에 글 작성이나 사람들과의 인터렉션에 AI를 아주 많이 사용합니다. ‘~라고 메시지가 왔는데 어떻게 답변할까?’ 와 같은 질문을, 저는 LLM에게 던져본 적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의 자아가 LLM에게 갉아먹히는 경험을 합니다. 저의 의견보다 ChatGPT나 Claude의 의견이 대개 더 낫기 때문에 저는 결정이나 생각을 그들에게 위탁합니다. 저의 알량한 지식이나 철학은 이제 필요가 없습니다. 애초에, LLM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폭이 더 넓고, 더 열린 철학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멍청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C++ 코드를 작성했을 때, 그것도 힘들게 근거를 따져가며, 모든 프로그래밍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가 확인하고 클래스를 작성했을 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최근 들어 떠오르지 않습니다. 무서운 점은, 실제로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현대 사회에 근시가 많아졌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닌 것처럼요. 안경을 쓰면 되니까요! 더 무서운 점은, 이게 사회적으로 낫습니다. 이 생각하는 것을 중지하고 AI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AI가 인간보다 똑똑하다는 것은 이제 예외없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아니더라도, 적어도 저에게는 적용됩니다.

사실 이건 비단 저뿐만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컴퓨터 기술과 관련한 분야에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AI가 미치는 영향이 타 분야보다 상당히 크기 때문에 현재는 해당 분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나오지만, 결국에는 AI와 로봇이 모든 분야를 지배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것입니다.

새로운 ‘Wane’은 당신이 실망할 것이다.#

저는 AI가 주도할 2030년대를 냉소적이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판단이 상당수 무시되는, 혹은 필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즉, 개성이 없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울 것이며, 자세히는 ‘멋진 신세계’에서 묘사하는 세계와 비슷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라 하면, 멋진 신세계에서는 구조적으로 인간에게 자유가 없었지만, 2030년 AI 시대에서는 인간이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더 비참합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항할 용기가 없으므로 적응하기로 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제부터 Wane의 판단과 글의 대부분, 특히 기술적인 부분은 AI의 의견을 상당량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저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은 많을 것이며 (아마 지금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동경하는 우상도 마찬가지예요!) 그들과 저의 문체나 판단, 문제 해결 방식이 비슷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저의 이러한 선택에 대해 반감을 표할 수 있습니다. AI Slop, Meat Proxy 등 창의적인 조롱 표현이 있는 것이 하나의 근거입니다. 개인 고유의 개성이 없어지고, 비슷한 것들이 널리며,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를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며, 저는 해당 비판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전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결국 적응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wo personas#

이와 별개로 자아가 갉아먹히는 경험은 썩 좋지 않기 때문에, 도피하기 위해 저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저는 두 가지 자아를 구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앞서 말한 새로운 ‘Wane’과, 저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표출하는 또다른 ‘Wane’ - 아니, ‘Dis’ 입니다. 저는 이전부터 두 가지 닉네임을 쓰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Dis’ (Dis33이나, Disorder33의 alias가 있습니다.) 이고, 하나는 여러분들이 익히 아는 ‘Wane’ 입니다. 저는 게임하는 저와 기술적인 저를 분리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이유는 그저 Wane을 더 프로패셔널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가지 분리된 자아 (와 계정) 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당신이 ‘Wane’에게서 오직 기술적인 내용만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Dis’를 재활용하여 저만의 의견을 표출하는 다른 자아로 만들 것이며, 그 내용의 장은 X와 Discord (@disorder331) 이 될 것입니다. 사실 ‘Wane’을 아는 사람은 ‘Dis’를 알 수 없게 제가 설계해 놓았지만 여기까지 읽은 당신이라면 ‘Dis’를 공개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Dis’는 원래 하던 게임 컨텐츠에 대한 발언과 더불어 제 의견을 활발하게 표출하는 자아로 만들 것입니다. 이 블로그도, 이제는 ‘Dis’ 라는 이름으로 올라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The end of me
https://blog.wane.im/posts/end/
Author
Wane
Published at
2026-08-24
License
CC BY-NC-SA 4.0